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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합총서의 '화채'는 음료가 아니었다|숭어·해삼이 들어간 화려한 어채 이야기

규합총서의 '화채'는 음료가 아니었다|숭어·해삼이 들어간 화려한 어채 이야기 '화채'라고 하면 붉은 오미자 국물이나 달콤한 물에 과일을 띄운 시원한 음료부터 떠올리기 쉽죠. 그런데 조선 후기 『규합총서』에 나오는 화채는 모습부터 완전히 달라요. 숭어를 중심으로 여러 고기와 해산물, 채소를 가늘게 썰어 녹말을 묻히고 데쳐 화려하게 담아낸 음식으로, 오늘날 어채 또는 어숙회라고 부르는 음식과 연결된답니다. 목차 규합총서의 화채는 어떤 음식일까 숭어와 여러 재료를 어떻게 화채로 만들었을까 오색으로 차려낸 화채와 조선의 어채 문화 1. 규합총서의 화채는 어떤 음식일까 중심 재료는 숭어예요. 성한 숭어의 살을 얇게 저미고 녹말을 묻혀 가늘게 썰어 준비해요. 여기에 천엽, 양, 곤자소니, 부아 같은 쇠고기 부위와 생치, 대하, 해삼, 삶은 제육까지 들어가요. 한 종류의 생선만 데쳐 먹는 단순한 숙회가 아니라, 바다에서 얻은 재료와 육류를 한 상에 함께 구성한 음식인 거죠. 채소와 고명도 다양해요. 푸른 오이와 미나리, 표고, 석이, 파, 국화잎, 생강, 고추를 쓰고, 황백으로 나누어 부친 달걀도 채 썰어요. 무는 곱게 채를 쳐서 붉은색을 들이고요. 이렇게 준비하면 흰색과 붉은색, 노란색, 푸른색, 검은색 계열의 재료가 한 그릇에 어우러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규합총서』의 화채에서 '화려하다'는 인상은 이름에만 머물지 않아요. 부드럽게 익힌 숭어와 해산물, 육류에 여러 색의 채소와 고명을 더해서, 맛과 질감뿐 아니라 색의 대비까지 고려한 음식이거든요. 지금의 음료 화채와 이름은 같지만, 완성된 모습은 화려하게 차려낸 어채에 훨씬 가까워요. 2. 숭어와 여러 재료를 어떻게 화채로 만들었을까 화채를 만들 땐 먼저 재료마다 모양을 맞춰 손질해요. 숭어는 얇게 저미고 녹말을 묻힌 뒤 가늘게 썰어요. 천엽과 양, 곤자소니, 부아, 생치, 대하, 해삼, 삶은 제육도 얇게 저며 가늘게 채를...

닭 속에 일곱 가지 향을 채웠다|규합총서 '칠향계'와 조선의 향신 닭요리

닭 속에 일곱 가지 향을 채웠다|규합총서 '칠향계'와 조선의 향신 닭요리 조선시대에도 닭 한 마리에 향이 강한 여러 재료를 채워 익히는 음식이 있었어요. 『규합총서』에 기록된 칠향계(七香鷄)예요. 살찌고 묵은 암탉을 손질한 뒤 삶은 도라지, 생강, 파, 천초, 간장, 기름, 식초를 속에 넣고 오지항아리에서 중탕하는 닭요리죠. 닭을 국물에 푹 삶는 백숙과 달리, 속을 채운 닭과 양념을 별도의 항아리에 담아 익힌다는 점에서 조리 구조가 뚜렷해요. 이 조리법, 사실 규합총서만의 것도 아니에요. 1500년대 『수운잡방』부터 1760년대 『증보산림경제』를 거쳐 『규합총서』까지, 300년 넘게 꾸준히 기록으로 이어진 조리법이랍니다. 그만큼 조선 사람들이 오랫동안 아껴온 닭요리였다는 뜻이겠죠. 목차 칠향계는 어떤 닭요리일까 닭을 채우고 항아리를 봉해 어떻게 중탕했을까 일곱 가지 재료와 조선의 향신 닭요리 문화, 그리고 알아둘 점 1. 칠향계는 어떤 닭요리일까 '칠향'이라는 이름은 닭 속에 넣는 일곱 가지 재료와 연결돼요. 삶은 도라지 1뿌리, 생강 4~5쪽, 파 1자밤, 천초 1자밤, 간장 1종지, 기름 1종지, 식초 반 종지가 기록되어 있어요. 도라지와 파, 생강은 각각 식감과 향을 더하고 천초에서는 특유의 알싸한 향이 나요. 간장은 짠맛과 감칠맛을, 기름은 풍미를, 식초는 산미를 보태고요. 그래서 칠향계의 맛은 닭고기 자체에만 머물지 않아요. 향이 뚜렷한 채소와 향신 재료, 간장과 기름, 식초가 한데 사용되니 짠맛과 산미, 알싸한 향이 함께 어우러지는 거죠. 삶은 도라지까지 닭 속에 들어가니 고기를 먹는 사이사이 부드럽게 익은 뿌리채소의 질감도 맛볼 수 있어요. 여러 재료의 향을 닭 한 마리에 모아 익힌다는 점이 칠향계라는 이름을 잘 보여줘요. 2. 닭을 채우고 항아리를 봉해 어떻게 중탕했을까 칠향계에서 가장 눈여겨볼 부분은 조리기술이에요. 먼저 살찌고 묵은 암탉을 깨끗하게 손질해요. 배를...

삼키기 아까워 '석탄병'이라 불렀다|규합총서 감설기의 정체

삼키기 아까워 '석탄병'이라 불렀다|규합총서 감설기의 정체 '먹기 아까운 음식'이라는 말은 익숙하죠. 그런데 '삼키기 아까운 떡'이라는 이름을 가진 음식은 흔치 않아요. 『규합총서』에 기록된 석탄병(惜呑餠)이 바로 그런 떡이에요. 한자를 풀면 아낄 석(惜), 삼킬 탄(呑), 떡 병(餠)으로, 맛이 좋아 삼키기 아깝다는 뜻을 이름에 그대로 담았어요. 음식의 맛을 이름 자체로 표현했다는 점, 그래서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는 전통 떡이랍니다. 목차 석탄병은 어떤 떡일까 규합총서의 석탄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삼키기 아깝다는 이름에 담긴 옛 떡 문화, 그리고 알아둘 점 1. 석탄병은 어떤 떡일까 석탄병은 감을 이용해 만드는 설기떡의 한 종류라, 감설기라고도 불러요. 중심 재료는 멥쌀과 말린 감이에요. 말린 감을 잘 말려 가루로 내고 멥쌀가루와 섞어요. 여기에 귤병과 생강, 잣, 계피, 대추, 밤처럼 맛과 향, 씹는 느낌이 저마다 다른 재료가 들어가요. 쌀가루만 쪄낸 흰 설기랑 비교하면 재료 구성이 한층 풍성하죠. 맛에서도 감이 중심을 이뤄요. 수분이 줄어든 감을 쓰다 보니 감에서 오는 단맛이 쌀가루와 어우러지고, 계피와 생강에서는 향긋하면서 알싸한 향이 더해져요. 대추와 밤은 각각 다른 단맛과 포슬한 식감을 보태고, 잣은 씹을 때 고소한 맛을 내요. 귤병까지 들어가면 감과 쌀만으로 만든 떡보다 여러 향이 겹치는 구성이 되는 거죠. 그러니까 석탄병은 단순히 곶감을 넣은 떡이라기보다, 말린 과실과 견과류, 향신 재료를 멥쌀가루 안에 함께 구성한 떡이에요. 여러 재료가 한 조각 안에서 각기 다른 맛과 식감을 낸다는 점, 석탄병이라는 특별한 이름과 참 잘 어울린답니다. 2. 규합총서의 석탄병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석탄병을 만드는 첫 과정은 감을 말리는 일에서 시작해요. 잘 익은 감을 골라 말린 뒤 가루로 만들고 멥쌀가루와 섞어요. 감을 큼직하게 썰어 떡 사이에 넣는 방식과 달리...

잠 못 이루는 밤, 조선의 식치서는 무엇을 먹으라 했을까|식료찬요 산조인죽

잠 못 이루는 밤, 조선의 식치서는 무엇을 먹으라 했을까|식료찬요 산조인죽 잠자리에 누웠는데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옛사람들에게도 있었어요. 조선 전기의 식치서 『식료찬요』에는 이런 상태를 '심번(心煩), 부득면수(不得眠睡)'라고 표현하고, 산조인으로 죽을 끓여 먹는 방법을 기록해뒀답니다. 오늘날의 질환명보다는 당시 사람이 겪는 상태를 중심으로 음식의 쓰임을 설명한 거예요. 목차 산조인죽은 어떤 음식일까 식료찬요의 산조인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심번과 부득면에 산조인죽을 기록한 이유, 그리고 알아둘 점 1. 산조인죽은 어떤 음식일까 산조인(酸棗仁)은 멧대추의 씨 속에 들어 있는 종인이에요. 겉의 열매를 먹는 대추와 달리, 단단한 씨껍질 안쪽의 알맹이를 약재로 써요. 『식료찬요』에서도 산조인을 과일이나 곡물처럼 죽에 그대로 섞지 않고, 물에 갈아 즙을 얻는 방식으로 다뤘어요. 여기에 쌀을 넣어 한 그릇의 죽으로 완성하는 거죠. 산조인죽의 구성은 참 단순해요. 산조인과 쌀, 물이 중심이라 여러 약재를 배합한 탕약과는 형태부터가 달라요. 쌀이 익으면서 전분이 풀어져 부드러운 죽이 되고, 산조인에서 얻은 즙이 죽의 액체 부분을 이뤄요. 약재를 달인 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곡물을 함께 익혀 음식으로 먹었다는 점, 『식료찬요』다운 식치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죽이랍니다. 2. 식료찬요의 산조인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기록에 제시된 재료는 산조인 1냥과 쌀 2홉이에요. 먼저 산조인 1냥을 잘게 썬 뒤 물 1되에 넣어 갈아요. 그런 다음 즙을 얻고 여기에 쌀 2홉을 넣어요. 산조인을 통째로 쌀과 함께 끓이는 게 아니라, 먼저 물로 산조인의 즙을 마련하고 그 액체로 죽을 만드는 순서예요. 이 조리법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연취즙(硏取汁)', 그러니까 갈아서 즙을 취하는 과정이에요. 단단한 종인을 물과 함께 갈아 액체를 얻은 뒤 쌀을 익히는 데 이용해요. 산조인 가루를 완성된 죽...

정조 임금의 변비, 어떤 변비였을까|하기이수라는 힌트

정조 임금의 변비, 어떤 변비였을까|하기이수라는 힌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 왕실 기록 속에 남아있는 정조 임금의 건강 이야기와 한의학 상식을 풀어보려고 해요. 1788년 일성록을 보면 정조 임금이 밤새 대변을 잘 못 봐서 '아랫배가 더부룩하다'고 호소했던 기록이 있어요. 당시 어의들은 욱리인을 미음에 타서 생강즙과 함께 올리라고 처방했고, 그 욱리인을 율무와 함께 죽으로 끓여 먹는 방법이 『식료찬요』에도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정조 임금은 대체 어떤 유형의 변비로 고생했던 걸까요? 한의학에서는 변비를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만 보지 않거든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왜 하필 율무를 짝지어 처방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정조가 처했던 상황부터 보면 정조 임금은 즉위 초부터 마음 편히 잠들기 어려웠던 왕이었어요. 세손 시절에는 독살 위험 때문에 밤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고, 즉위 1년째인 1777년에는 실제로 자객이 밤새 책을 읽던 존현각까지 침투한 사건(정유역변)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직접적인 암살 위협에 여러 차례 노출되었으니, 마음 편히 쉬거나 깊은 잠을 이루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한의학에서는 이렇게 오래 쌓인 스트레스와 억눌린 긴장 상태를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요. 마음이 계속 긴장하고 억눌린 상태가 이어지면 소화기관을 포함해 몸 전체의 기운 순환이 정체된다고 보는 거죠. 정조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기운의 정체가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어요. 변비에도 '마른 변비'와 '습한 변비'가 있다 한의학에서 변비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살펴봐요. 첫 번째는 몸에 진액이 부족해 장이 메마르고 딱딱해진 '마른 변비'예요. 이럴 때는 장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약을 사용하게 되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몸에 습한 기운이 정체되면서 장의 움직임 자체가...

덜 익은 오디가 사실 더 정통에 가까웠다|상심자의 전통 개념과 당지수 정리

덜 익은 오디가 사실 더 정통에 가까웠다|상심자의 전통 개념과 당지수 정리 지난 뽕잎 얘기할 때 뽕나무는 뿌리부터 잎까지 통째로 약이 되는 나무라고 말씀드렸었죠. 이번엔 그 뽕나무의 열매, 오디예요. 익으면 진한 보라색이 되는데, 어릴 때 먹다가 흰 옷에 묻어서 지워지지도 않는 얼룩을 남긴 기억이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거예요. 저도 그랬고요. 근데 저는 사실 완전히 검게 잘 익은 것보다, 살짝 덜 익어서 붉은 기가 도는 오디를 더 좋아했어요. 새콤한 맛이 확실했거든요. 그리고 베리류니까 당지수도 그렇게 높지 않을 거라 막연히 생각했었는데, 이번에 찾아보면서 이 두 가지가 생각보다 더 흥미로운 얘기로 이어지더라고요. 목차 덜 익은 오디가 진짜 상심자였다니 오디를 졸여 상심자고로 만드는 법 보간신·자음, 그리고 흰머리 얘기 당지수 낮다는 말, 어디까지 맞을까 1. 덜 익은 오디가 진짜 상심자였다니 여기서 제 개인적 취향이 뜻밖에 전통 방식이랑 겹치는 지점이 있었어요. 한의학에서 약재로 쓰는 상심자는 완전히 까맣게 익은 오디가 아니라, 붉은빛을 띨 때, 그러니까 완전히 익기 직전에 채취해서 말린 거였거든요. 제가 새콤해서 좋아했던 바로 그 상태예요. 상심자는 성질이 온화하고 맛은 달면서 약간 시다고 전통적으로 설명돼요. 당나라 때부터 약재로 쓰기 시작했다는 기록도 있고요. 완전히 검게 익은 오디랑 살짝 덜 익어 신맛이 남은 오디, 둘 다 먹을 수는 있지만 전통 약재로서는 후자 쪽에 더 가까웠다는 게 재밌더라고요. 2. 오디를 졸여 상심자고로 만드는 법 상심자를 오래 두고 먹는 방법 가운데 하나가 고(膏)로 만드는 거예요. 재료를 오래 달이거나 졸여서 걸쭉한 농축액으로 만드는 전통적인 가공법인데, 경옥고나 복령고처럼 여러 약재를 이런 방식으로 만들어 온 게 한의학의 오래된 제법이에요. 오디로 만들 때는 잘 씻은 오디를 냄비에 넣고 물을 자작하게 부어 약한 불로 오래 끓입니다. 오디 자체에서 수분과 당분이 우러나오면서 국물이 ...

자동차에 모과 두던 그 시절, 사실은 한약재였다.|뭉친 근육을 다스리던 모과 식치 정리

목과육적 알아보기|뭉친 근육을 다스리던 모과 식치 정리 지금이야 디퓨저니 방향제니 하는 것들이 흔하지만, 예전엔 택시나 자가용 뒷자리 유리 밑에 노랗고 울퉁불퉁한 열매 하나가 항상 놓여 있었어요. 모과예요. 집 한 켠에도 종종 올려두곤 했는데, 그 못생긴 열매에서 나는 향이 은근히 진하고 좋아서, 어릴 땐 그게 원래 방향제 용도인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런데 모과는 향으로만 쓰인 게 아니었더라고요. 한의학에서는 이 열매를 근육과 관련된 식치 재료로 꽤 비중 있게 다뤄왔습니다. '목과육적(木瓜肉炙)'이라는 이름이 특정 고문헌에 그대로 실려 있는지는 확인이 안 됐어요. 다만 모과를 근육 문제에 활용한 기록 자체는 분명히 있어서, 이번 글은 그 부분을 정확하게 짚어보려고 합니다. 목차 서근활락, 모과가 근육과 엮인 이유 동의보감의 목유탕, 정확히 뭘 다스렸나 유기산이 근육을 풀어준다는 말, 어디까지 사실일까 1. 서근활락, 모과가 근육과 엮인 이유 한의학에서 모과를 설명할 때 자주 나오는 말이 서근활락(舒筋活絡)이에요. 풀어보면 "뭉친 근육을 펴고 기혈이 통하는 길을 다시 뚫어준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화습화위(化濕和胃), 거풍습(祛風濕) 같은 표현도 같이 따라붙는데, 이것도 전통 의학 안에서 습(濕)과 풍(風)이라는 개념으로 몸 상태를 설명하던 방식이에요. 재밌는 건 여기서 말하는 '근(筋)'이 단순히 오늘날의 근육 조직만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점이에요. 한의학에서는 간(肝)이 근(筋)을 주관한다고 봤고, 그래서 모과가 근육 관련 문제에 쓰인 배경을 간이 주관하는 영역과 연결해서 이해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근육통이나 쥐 나는 증상과 완전히 같은 범주는 아니라는 거죠. 2. 동의보감의 목유탕, 정확히 뭘 다스렸나 모과와 근육 얘기를 할 때 실제로 확인되는 기록이 있어요. 바로 동의보감에 실린 목유탕(木瓜湯)입니다. 이건 구토와 설사를 심하게 겪은 뒤에 다리에 쥐가 나는, 이른...

상엽전 만드는 법|뽕잎의 전통 식치와 식후 혈당 성분 정리

상엽전 만드는 법|뽕잎의 전통 식치와 식후 혈당 성분 정리 본초학 시간에 상엽, 상지, 상백피를 배우던 날이 아직도 기억나요. "어? 이 나무는 뿌리껍질도 약이고, 가지도 약이고, 잎까지 약이네?" 싶었거든요. 보통 한약재는 딱 한 부위만 씁니다. 뿌리만 쓰거나, 껍질만 쓰거나, 열매만 쓰거나. 그런데 뽕나무는 뿌리껍질(상백피), 가지(상지), 잎(상엽)까지 전부 이름을 따로 붙여서 약으로 써요. 나무 한 그루를 통째로 뜯어먹는 느낌이랄까요. 거기서 끝이 아니에요. 이 잎을 먹고 사는 누에가 병에 걸려 죽으면 그게 또 백강잠이라는 약재가 됩니다. 누에가 백강병균에 감염돼서 하얗게 굳어 죽은 걸 말린 건데, 전통적으로 중풍으로 말이 어눌해지거나 몸 한쪽이 마비됐을 때 쓰던 약재예요. 뽕나무 잎을 먹은 벌레까지 약이 된다니, 처음 배울 땐 진짜 신기했습니다. 오늘은 그 뽕잎으로 부침개, 상엽전을 만들어보려고 해요. 다만 '상엽전'이라는 이름이 특정 고문헌에 그대로 나오는지는 아직 확인 못 했어요. 뽕잎을 부쳐 먹었다는 기록 자체는 여러 향토음식 자료에 있는데, 정확히 이 이름으로는 못 찾았거든요. 그래서 이름의 유래보다는 실제 조리법이랑, 뽕잎 하면 꼭 따라붙는 DNJ 얘기를 제대로 짚어보려 합니다. 목차 상엽전엔 어린잎이 낫다 반죽부터 부치기까지 DNJ, 여기서 다들 낚이는 지점 1. 상엽전엔 어린잎이 낫다 부침개로 쓸 땐 억센 잎보다 연한 새순이 훨씬 낫습니다. 뽕잎 성분을 부위·시기별로 분석한 연구를 보면, 품종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5월경 딴 상위엽(가지 끝 어린잎)에서 DNJ며 GABA, 플라보노이드 같은 성분이 6월·8월 것보다, 또 아래쪽 잎보다 높게 나온다고 해요. 근데 여기서 바로 "그럼 5월 상위엽으로 부친 상엽전이 최고겠네!"로 넘어가면 좀 성급해요. 그 연구, 부침개를 분석한 게 아니라 말린 잎이나 추출물을 분석한 거니까요. 밀가루 반죽 입히고 기름에 고온...

지황주 빚는 법|생지황과 찹쌀로 만드는 전통 약주 정리

지황주 빚는 법|생지황과 찹쌀로 만드는 전통 약주 정리 대학 시절 졸업논문 주제로 생지황을 숙지황으로 귀하게 만드는 구증구포 실험을 정성껏 진행했던 적이 있어요. 찜통에 지황을 올렸다 내렸다 아홉 번이나 반복해 가며, 매 단계마다 시료를 알뜰하게 채취해서 성분 변화를 세심하게 분석했었는데 그때 참 예상과 달랐던 흥미로운 결과가 하나 있었답니다. 흔히 기대하곤 하는 '몸에 좋은 유효성분이 점점 늘어난다'는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지황의 대표 성분인 카탈폴은 오히려 증숙할수록 점점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5-HMF라는 갈변 관련 물질과 달콤한 당류가 알차게 채워가는 양상이었거든요. 실험이 모두 끝난 뒤 동기들과 소중하게 남은 숙지황으로 직접 지황주를 도란도란 담가보았던 따스한 기억도 함께 남아있답니다. 그때의 귀한 경험을 바탕으로, 전통 고서 『임원경제지』에도 정성스럽게 전해지는 지황주 이야기를 오늘 차근차근 정리해 보려고 해요. 생지황과 고소한 찹쌀을 이용해 정성껏 만드는 가양주 방식이며, 숙지황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실제로 어떤 유익한 성분 변화가 일어나는지도 함께 세심하게 살펴볼게요. 구증구포, 무엇이 늘고 무엇이 줄어드는가 생지황을 깊은 풍미의 숙지황으로 정성스럽게 만드는 구증구포는 찌고 말리는 정성스런 과정을 아홉 번이나 반복하는 우리 전통의 지혜로운 가공법이에요. 이 인고의 과정 속에서 지황의 색은 본래의 밝은 황색에서 그윽한 검은빛으로 점차 바뀌고, 맛 역시 특유의 쓰고 떫은 편에서 달콤하고 부드러운 쪽으로 맛있게 변해간답니다. 실제 깊이 있는 성분 연구에서 확인되는 과학적인 변화들도 정말 흥미로워요. 지황을 대표하는 이리도이드 배당체 성분인 카탈폴은 신기하게도 증숙 횟수가 차근차근 늘어날수록 오히려 서서히 줄어드는 것으로 보고되어 있거든요. 실제 한 전문 연구에서도 생지황 분말에 풍부했던 카탈폴 함량이 숙지황 분말 단계로 넘어가면 약 3분의 1 수준까지 감소한 것으로 명확하게 나타났답니다. ...

죽순채 만드는 법|아삭한 죽순으로 차리는 봄철 숙채 정리

죽순채 만드는 법|아삭한 죽순으로 차리는 봄철 숙채 정리 담양 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대나무밭 옆 식당에서 처음으로 죽순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삭하면서도 은은하게 씹히는 식감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 시장에서 죽순을 사다 직접 손질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재료였습니다.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삶는 시간까지, 대충 넘어가면 특유의 아린 맛이 남아 먹기 불편했습니다. 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린 순으로, 하루에 최대 150cm까지 자랄 만큼 생장 속도가 빨라 '우후죽순'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죽순이 등장하는데, 잡병편이 아니라 탕액편(湯液篇) 채부(菜部)에 채소류의 하나로 실려 있고,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만 '죽순채약선'이라는 명칭 그대로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것은 아니며, 죽순이라는 식재료의 성질을 설명한 항목으로 보는 것이 정확합니다. 죽순 손질, 삶는 과정이 전부다 죽순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화려한 양념이 아니라 손질입니다. 생죽순에는 옥살산(수산)과 시아노겐 배당체라는 두 가지 성분이 들어 있는데, 옥살산은 체내에서 칼슘과 결합해 신장 결석을 일으킬 수 있고 시아노겐 배당체는 다량 섭취 시 복통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두 성분 모두 열에 약해서, 충분히 삶으면 대부분 제거됩니다. 죽순의 밑동을 자르고 겉껍질을 세로로 칼집 내어 벗깁니다. 쌀뜨물이나 맹물에 죽순을 넣고 최소 40분에서 1시간 이상 충분히 삶습니다. 젓가락으로 찔러 쉽게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삶은 죽순은 불을 끈 채로 그대로 식혀 아린 맛과 남은 독성 성분을 우려냅니다. 충분히 식으면 찬물에 헹궈 물기를 뺀 뒤, 결대로 적당한 두께로 썹니다. 이 손질 과정을 건너뛰고 살짝 데치기만 한 죽순을 그대로 먹으면 아린 맛이 강하게 남을 뿐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성분이 충분히 빠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도인 포장지가 기름종이로 변했던 이유|완하 작용의 진짜 정체와 안전 정보

도인 포장지가 기름종이로 변했던 이유|완하 작용의 진짜 정체와 안전 정보 한방병원에서 근무할 때 변비 처방에 도인이 들어간 처방을 자주 확인했어요. 그러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도인 약재를 볼 일이 있었는데, 약재를 싸고 있던 종이가 어느새 기름종이처럼 변해 있더라고요. 그만큼 도인 안에 기름 성분이 많다는 걸 실물로 확인한 순간이었어요. 그때부터 궁금했던 게 있어요. 도인이 변비에 쓰이는 게 정말 아미그달린이라는 성분 때문인지, 아니면 단순히 이 풍부한 기름 성분 때문인지 하는 거였어요. 정확한 답을 찾기 전에, 먼저 도인이라는 재료 자체를 다룰 때 반드시 알아야 할 안전 정보부터 짚고 넘어갈게요. 목차 도인, 안전 정보부터 확인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 완하 작용, 아미그달린 때문일까 기름 때문일까 동의보감 삼인죽에 기록된 도인의 자리 1. 도인, 안전 정보부터 확인하고 시작해야 하는 이유 도인(桃仁)은 복숭아씨의 딱딱한 껍질을 제거하고 남은 속씨를 말해요. 이 속씨에는 아미그달린(amygdalin)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는데,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의 생약규격 자료에서도 도인은 건조 상태 기준 아미그달린을 1.0% 이상 함유하도록 정하고 있어요. 아미그달린은 체내에서 분해되는 과정에서 시안화합물을 만들어낼 수 있는 청산배당체예요. 살구씨(행인)에도 같은 계열의 성분이 들어 있어, 두 씨앗 모두 날것으로 다량 섭취하면 중독 위험이 있다는 점이 여러 전문가 자료에서 공통으로 지적돼요. 그래서 도인을 다루기 전에 반드시 구별해야 할 게 있어요. 한의원이나 한약재상에서 규격에 맞게 법제(포제)해 유통하는 도인과, 집에서 먹고 남은 복숭아씨를 직접 깨서 사용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에요. 전통적으로 도인·행인처럼 청산배당체를 가진 약재를 다룰 때 법제 과정을 반드시 거치도록 한 이유도 이 독성을 관리하기 위해서였어요. 2. 완하 작용, 아미그달린 때문일까 기름 때문일까 도인은 장미과 복사나무 또는 산복사나무의 씨를 말해요....

영조가 타락죽을 끊게 한 진짜 이유|타락전복찜은 어디서 왔을까

영조가 타락죽을 끊게 한 진짜 이유|타락전복찜은 어디서 왔을까 1768년 1월, 영조는 봄갈이가 머지않았다는 이유로 내의원과 기로소에서 올리던 타락죽 진상을 정지시키고, 젖을 짜던 어미소를 송아지와 함께 놓아주라고 명했어요. 우유죽 한 그릇 때문에 소가 농사철 노동력에서 빠지는 걸 막으려던 거예요. 이 기록 하나만 봐도 조선시대 우유가 얼마나 귀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진 재료였는지 감이 오죠. 그런데 요즘 이 타락에 전복까지 더한 '타락전복찜'이라는 궁중 비방이 있다는 얘기가 종종 보여요. 실제로 그런 음식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이 부분부터 확인해볼게요. 목차 타락죽,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맞바꾼 음식 생복찜은 있어도 타락전복찜은 없다 우유와 전복, 함께 먹으면 정말 시너지가 날까 1. 타락죽,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맞바꾼 음식 타락(駝酪)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로, 몽골어의 우유 관련 어휘에서 왔다고 설명돼요. 조선시대에는 젖소를 따로 기르지 않고 일하는 소가 송아지를 낳았을 때만 잠시 젖을 짤 수 있었기 때문에, 우유는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귀한 재료였어요. 앞서 말씀드린 영조 44년(1768년) 기록 외에도, 이보다 앞선 영조 29년(1753년) 7월의 기록에도 비슷한 취지로 낙죽(酪粥)을 올리지 말라는 명이 확인돼요. 즉 타락죽은 단순한 궁중 별미가 아니라,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젖 짜는 시기까지 고려해야 했던 음식이었던 거예요.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도 쌀을 불려 곱게 간 무리에 생우유를 섞어 끓이는 타락법이 전하는데, 여기서도 중심 재료는 쌀과 우유 두 가지고 전복이 함께 등장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현재 확인되는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타락죽은 우유와 쌀을 이용한 죽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을 뿐, 전복과 결합한 찜 형태의 조리법으로 문헌에 남아 있지는 않아요. 2. 생복찜은 있어도 타락전복찜은 없다 『진찬의궤』 계열의 찬품 기록에서 전복을 다룬 음식을 찾으면 생복찜(生鰒蒸)이나 생복...

음양곽 지어달라던 어르신이 실망하고 돌아간 이유|온신장양과 이카리인 사이

음양곽 지어달라던 어르신이 실망하고 돌아간 이유|온신장양과 이카리인 사이 예전에 진료실에 어르신 한 분이 갑자기 들어오시더니, 발기부전이 심한데 음양곽이 좋다고 들었다며 음양곽으로 약을 지어달라고 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설명해 드렸어요. 음양곽에 이카리인이라는 성분이 들어있고, 이 성분이 산화질소를 통해 음경해면체 확장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있는 건 맞지만, 그건 임상시험을 다 통과한 게 아니라 아직 실험 단계의 결과라고요. 그리고 음양곽 단독으로 지어드린다고 비아그라나 시알리스 같은 확실한 효과를 기대하시긴 어렵다고도 말씀드렸고요. 그 말씀을 듣고 어르신이 많이 실망하며 돌아가셨던 기억이 나요. 그때 느꼈어요. 음양곽이라는 약재에 대한 기대와 실제 근거 사이의 간극이 생각보다 크다는 걸요. 오늘은 이 간극을 좀 정확하게 짚어볼게요. 목차 '양기를 일으키는 풀'이라는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음양곽주에서 더 눈여겨볼 것은 술보다 '가공의 방향'이다 이카리인과 PDE-5, 어르신께 못 드린 말씀 1. '양기를 일으키는 풀'이라는 이미지는 어디서 왔을까 삼지구엽초라는 이름은 가지가 세 갈래로 나뉘고 잎이 아홉 장처럼 보이는 형태에서 붙었다고 설명돼요. 한약재로 다룰 때는 주로 지상부를 음양곽(淫羊藿)이라 부르고요. 근데 이 약재에는 식물의 생김새보다 훨씬 강한 이미지가 따라다녀요. 이름의 유래부터 정력, 양기, 강장이라는 설명이 반복되거든요. 음양곽의 전통적인 설명에서 중심에 놓이는 개념 가운데 하나가 온신장양(溫腎壯陽)이에요. 전통 의학의 언어로는 신양이 부족한 상태를 따뜻하게 보하고, 허리와 무릎이 약하거나 차게 느껴지는 상태, 양위와 같은 병증 등에 사용해 온 약재로 설명돼요. 여기서 온신장양을 곧바로 '성호르몬을 증가시킨다'거나 '음경 혈류를 늘린다'는 현대 생리학 문장으로 바꾸는 건 적절하지 않아요. 온신장양은 전통 의학의 병리와 치료 체계 안...

뱅쇼와 계강흑임자송화차식|계피가 왕실 다식에도 들어간 이유

뱅쇼와 계강흑임자송화차식|계피가 왕실 다식에도 들어간 이유 예전에 일반인 대상 세미나에서 계피 얘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한 분이 손을 드시더니, 본인이 체질적으로 몸이 차갑고 추위를 많이 타서 프랑스식 음료인 뱅쇼를 5년째 저녁마다 소주잔으로 한 잔씩 마셔왔다고 하셨어요. 그랬더니 몸이 확실히 따뜻해지고 감기도 잘 안 걸린다면서, 왜 그런 건지 물어보셨어요. 뱅쇼는 와인에 계피와 오렌지 등을 넣고 데워 마시는 유럽식 음료예요. 저는 와인이 혈액순환을 돕는 것도 있지만, 여기 들어가는 계피가 한의학에서 몸을 따뜻하게 하는 재료로 오래 쓰여온 것도 같이 작용했을 거라고 설명해 드렸어요. 계피가 우리 전통 음식에 익숙한 재료라는 건 다들 아실 거예요. 수정과에도 들어가고, 옛날 처방에도 흔히 쓰였으니까요. 근데 1902년 궁중 잔치 기록엔 이보다 훨씬 구체적인 이름들이 남아있어요. 같은 잔치에서 나온 두 가지 계피 과자 먼저 '계강흑임자송화차식'이에요. 계피, 생강, 검은깨, 소나무 꽃가루(송화) 네 가지 맛으로 만든 다식인데, 맛마다 500개씩 만들어서 그릇에 높이 쌓아 올렸어요. 잔치 한 번에 이 다식만 2000개 가까이 준비했다는 얘기예요. 같은 해 같은 잔치 기록에 '계백강정'이라는 것도 있어요. 계피강정과 잣강정을 함께 담은 강정인데, 두 가지를 각각 450개씩 만들어서 그릇 높이를 1자 1치로 쌓았어요. 강정은 찹쌀가루를 술과 꿀로 반죽해 쪄낸 뒤 말려서 기름에 튀기고, 겉에 꿀을 발라 고물을 묻혀 완성하는 과자예요. 잣강정은 겉에 잣가루를 묻히고, 계피강정은 그 자리에 곱게 간 계핏가루를 묻힌 거고요. 흥미로운 건, 이 계피강정과 앞서 말한 계피 다식 두 가지 모두 일반 가정에서는 만들지 않고 궁궐에서만 만들었다는 기록이 따로 남아있다는 점이에요. 이 다식과 강정이 오른 잔치는 그냥 평범한 자리가 아니었어요. 1902년 11월, 고종이 51세가 되어 육순을 바라보는 나이(망육순)에 접어든 것과, 즉위...

정향과 침향으로 지은 밥, 임원경제지 '반향반'의 진짜 정체

정향과 침향으로 지은 밥, 임원경제지 '반향반'의 진짜 정체 예전에 한방병원에서 근무할 때 침향 위품에 관한 기획서를 쓴 적이 있어요.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산 아갈로차속(Aquilaria) 침향 샘플을 구해다가 실제로 수지만 따로 채취해 성분검사를 해봤는데, 결과가 좀 충격적이었어요. 위품들은 같은 아갈로차속이고 관능(향)이나 수지의 형태까지 진품이랑 거의 똑같은데, 정작 활성성분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그 뒤로 시중에 나온 침향환, 침향단, 침향공진단 같은 제품들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이게 정말 아갈로차속이 맞을까, 그중에서도 수지 부분만 제대로 써서 활성성분이 실제로 들어있는 걸까' 하고요. 이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 보게 된 음식이 하나 있어요. 『임원경제지』 「정조지」에 나오는 반향반(盤香飯)이에요. 정향과 침향을 넣어 짓는다는 '향기 나는 밥'인데, 오늘은 이걸 짚어볼게요. 목차 반향반은 정말 정조지에 있는 조리법일까 침향, 진짜인지부터 의심해야 하는 이유 정향의 오이게놀, 밥 한 그릇의 효과로 이어질까 1. 반향반은 정말 정조지에 있는 조리법일까 반향반을 설명할 때 정향(丁香)이나 침향(沈香) 같은 향이 강한 재료가 함께 언급돼요. 이 때문에 반향반을 '소화를 돕는 약선밥'처럼 이해하기 쉬워요. 근데 여기서 한 가지 구별할 게 있어요. 약재를 쌀과 섞어 최종적으로 함께 먹는 것과, 향이 강한 재료를 취사 과정에 이용해 밥에 향을 전달하는 건 조리 원리가 서로 달라요. 특히 반향반과 관련해 정향이나 침향 등의 향약을 별도로 싸서 밥을 지을 때 이용했다는 조리법이 소개되기도 해요. 다만 현재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이 세부 방법을 『정조지』 원문의 문구와 대조해 확정하기 어려워요. '정향과 침향을 넣은 주머니를 솥 한가운데 두었다'는 내용을 확정된 조리법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원문을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

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종종 환자들에게 탈모 얘기가 나오면 저는 늘 같은 설명해 드려요. 피부과 가셔서 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아보다트) 같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시고, 여기에 미녹시딜을 두피에 바르시는 게 지금까지 확인된 방법이라고요. 근데 이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정작 본인은 검은깨와 검은콩을 갈아 드시거나 검은깨를 환으로 빚어 챙겨 드신다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이런 음식이 처방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FDA에서 진작 승인이 되어 제약회사에서 약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검은깨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조선시대 요리책에 실린 검은깨죽 하나를 살펴볼게요. 흔히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는 그 죽이요. 조가 아니라 쌀이었다 서유구라는 학자가 쓴 『임원경제지』라는 책이 있어요. 조선 후기에 생활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모아놓은 백과사전 같은 책인데, 그중 음식 부분에 죽 만드는 법이 여러 개 나와요. 그 열한 번째로 나오는 게 오늘 얘기할 '거승죽'이에요. 거승은 검은깨의 옛날 이름이고, 요즘 말로 하면 그냥 흑임자죽이에요. 근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죽을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면서, 쌀 대신 조를 넣어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글이 많아요. 실제 원문을 확인해봤더니, 이건 틀린 얘기더라고요. 원문에 적힌 재료는 조가 아니라 멥쌀이었어요. 한자로 조는 '속미', 멥쌀은 '갱미'라고 쓰는데, 책에 분명히 '갱미'라고 나와 있어요. 한 글자 차이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로 '옛날엔 쌀 대신 조로 죽을 쒔다'는 얘기 자체가 근거 없는 얘기가 돼버려요. 사실 이 죽에서 진짜 눈여겨볼 부분은 쌀도 조도 아니에요. 검은깨를 손질하는 과정이에요. 검은깨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서 보관해뒀다가, 쓸 때는 뜨거운 물에 불려서 천에...

죽순채 만드는 법|아삭한 죽순으로 차리는 봄철 숙채 정리

죽순채 만드는 법|아삭한 죽순으로 차리는 봄철 숙채 정리 담양 쪽으로 여행을 갔다가 대나무밭 옆 식당에서 처음으로 죽순 요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있습니다. 아삭하면서도 은은하게 씹히는 식감이 인상적이었는데, 정작 집에 돌아와 시장에서 죽순을 사다 직접 손질해보니 생각보다 손이 많이 가는 재료였습니다. 껍질을 벗기는 것부터 삶는 시간까지, 대충 넘어가면 특유의 아린 맛이 남아 먹기 불편했습니다. 죽순은 대나무의 땅속줄기에서 돋아나는 어린 순으로, 하루에 최대 150cm까지 자랄 만큼 생장 속도가 빨라 '우후죽순'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습니다. 『동의보감』에도 죽순이 등장하는데, 탕액편(湯液篇) 채부(菜部)에 채소류의 하나로 실려 있고, 성질이 차고 맛이 달며 독이 없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좋은 죽순 고르는 법 죽순을 살 때는 밑동 단면이 촉촉하고 하얀 것을 고르는 게 좋습니다. 단면이 마르거나 변색된 건 캔 지 오래된 것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껍질에 자잘한 반점(호랑이 무늬처럼 보이는 얼룩)이 있는 건 자연스러운 특징이니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되고, 대신 눌렀을 때 너무 물렁하거나 마른 느낌이 나는 건 피하시는 게 좋습니다. 죽순은 캐낸 순간부터 아린 맛이 강해지기 시작하므로, 가급적 구입 당일 손질하는 게 가장 좋은 맛을 볼 수 있는 방법입니다. 죽순 손질, 삶는 과정이 전부다 죽순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화려한 양념이 아니라 손질입니다. 생죽순에는 옥살산(수산)과 시아노겐 배당체라는 두 가지 성분이 들어 있는데, 옥살산은 체내에서 칼슘과 결합해 신장 결석을 일으킬 수 있고 시아노겐 배당체는 다량 섭취 시 복통이나 구토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다행히 두 성분 모두 열에 약해서, 충분히 삶으면 대부분 제거됩니다. 죽순의 밑동을 자르고 겉껍질을 세로로 칼집 내어 벗깁니다. 쌀뜨물이나 맹물에 죽순을 넣고 최소 40분에서 1시간 이상 충분히 삶습니다. 젓가락으로 찔러 쉽게 들어갈 정도가 되어야 합니다. 삶은 죽순은 ...

당귀신과 당귀미, 같은 뿌리인데 왜 다르게 썼을까|당귀나물과 당귀주 이야기

당귀신과 당귀미, 같은 뿌리인데 왜 다르게 썼을까|당귀나물과 당귀주 이야기 대학 시절 본초학과 방제학 시간에 당귀를 배우면서 꽤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같은 당귀 뿌리인데 몸통 부위(당귀신)와 뿌리 끝 잔뿌리 부위(당귀미)의 효능을 다르게 가르치더라고요. 당귀수산이라는 처방에서는 어혈을 없애는 작용을 위해 당귀미를 쓰고, 공진단에서는 혈을 보하는 작용을 위해 당귀신만 쓴다는 거였어요. 같은 뿌리에서 부위만 다른 건데 왜 이렇게 갈리는 건지 궁금해서, 성분 차이를 다룬 논문을 찾아본 적도 있어요. 당귀도 다 같은 당귀가 아니다 그때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게, 부위 얘기 이전에 당귀 자체가 종부터 다르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쓰는 참당귀(Angelica gigas)와 일본의 일당귀(Angelica acutiloba), 중국의 중국당귀(Angelica sinensis)는 겉모습도 다르고 뿌리 성분도 달라요. 세종 5년(1428년)에는 학자들을 명나라에 보내 살펴본 뒤, 중국당귀 대신 우리나라 참당귀를 의서에 올려 쓰기로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성분 차이도 뚜렷해요. 참당귀에는 데커신과 데커신안젤레이트라는 성분이 있는데, 일당귀나 중국당귀에는 이 성분이 없어요. 대신 일당귀는 보혈 작용이, 참당귀는 혈액순환을 돕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이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어혈에는 참당귀를, 보약에는 일당귀를 쓰는 식으로 구분하기도 해요. 참고로 시중에서 쌈채소로 파는 당귀잎은 대부분 일당귀예요. 나물로, 떡으로, 술로 먹었던 당귀 당귀는 옛날엔 '승검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어요.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이 승검초를 채소로 재배하는 법이 나오고, 나물 종류를 정리한 목록에도 '승검초나물'이 실제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떡으로도 만들어 먹었어요. 당귀 잎을 곱게 갈아 찹쌀가루에 섞어 찐 뒤, 거피팥소를 넣고 잣 고물에 굴려 만드는 '승검초단자'라는 떡이 전해요. 뿌리는 약재로 쓰고, 향...

정조지 권5를 넘기다 보면|대합 하나로 갈라지는 두 개의 조리법

대합, 굽는 법과 회로 먹는 법이 따로 있었다|'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의 정체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유구 선생님이 쓴 옛날 요리책을 조용히 읽어보다가 너무 재밌는 지점을 하나 발견해서 달려왔어요. 글쎄 대합이라는 조개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한 번은 노릇하게 구워 먹는 법으로, 또 한 번은 싱싱하게 회로 먹는 법으로 각각 따로 실려 있더라고요! 근데 요즘 이 조리법들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다 보면,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궁중 비방으로 소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돼요. 결론부터 딱 말씀드리면, 이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은 원문 어디에도 전혀 없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대합 요리의 진짜 정체를 깔끔하게 정리해드릴게요. 같은 조개인데 왜 두 번 나올까 이 책은 음식들을 조리하는 방법별로 차곡차곡 나눠서 정리해뒀어요. 불에 직접 굽는 요리를 모아놓은 파트에 대합 굽는 법이 하나 실려 있고, 회를 다루는 파트에는 대합 회 뜨는 법이 따로 실려 있는 식이죠. 같은 조개라도 굽느냐, 회로 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항목으로 구분해 기록해둔 거예요. 이게 왜 이렇게 흥미롭냐면요, 옛날 사람들이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음식으로 취급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조개 하나 가져다 놓고 '몸 어디 어디에 좋다'는 효능 얘기부터 늘어놓는 것보다, 이렇게 옛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조리해서 즐겼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이 옛날 회 뜨는 법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 가지만 주의해 주세요! 특히 여름철엔 조개가 비브리오균 같은 세균에 오염되기 쉬워서, 신선도가 정말 확실하지 않은 대합을 날로 드시는 건 절대 권하지 않아요. 옛날 조리법 기록과 요즘 우리가 지켜야 할 식품 위생 기준은 별개로 잘 챙기셔야 한답니다.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