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종종 환자들에게 탈모 얘기가 나오면 저는 늘 같은 설명해 드려요.
피부과 가셔서 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아보다트) 같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시고, 여기에 미녹시딜을 두피에 바르시는 게 지금까지 확인된 방법이라고요.
근데 이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정작 본인은 검은깨와 검은콩을 갈아 드시거나 검은깨를 환으로 빚어 챙겨 드신다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이런 음식이 처방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FDA에서 진작 승인이 되어 제약회사에서 약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검은깨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조선시대 요리책에 실린 검은깨죽 하나를 살펴볼게요. 흔히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는 그 죽이요.
조가 아니라 쌀이었다
서유구라는 학자가 쓴 『임원경제지』라는 책이 있어요. 조선 후기에 생활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모아놓은 백과사전 같은 책인데, 그중 음식 부분에 죽 만드는 법이 여러 개 나와요. 그 열한 번째로 나오는 게 오늘 얘기할 '거승죽'이에요. 거승은 검은깨의 옛날 이름이고, 요즘 말로 하면 그냥 흑임자죽이에요.
근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죽을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면서, 쌀 대신 조를 넣어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글이 많아요. 실제 원문을 확인해봤더니, 이건 틀린 얘기더라고요. 원문에 적힌 재료는 조가 아니라 멥쌀이었어요. 한자로 조는 '속미', 멥쌀은 '갱미'라고 쓰는데, 책에 분명히 '갱미'라고 나와 있어요. 한 글자 차이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로 '옛날엔 쌀 대신 조로 죽을 쒔다'는 얘기 자체가 근거 없는 얘기가 돼버려요.
사실 이 죽에서 진짜 눈여겨볼 부분은 쌀도 조도 아니에요. 검은깨를 손질하는 과정이에요. 검은깨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서 보관해뒀다가, 쓸 때는 뜨거운 물에 불려서 천에 싸서 비벼 껍질을 벗기고, 물에 갈아서 즙을 낸 다음 그 즙에 쌀을 넣어 끓였어요. 곡물을 바꾼 게 아니라, 검은깨를 이렇게까지 정성 들여 손질했다는 게 이 죽의 진짜 특징이에요.
검은깨가 탈모에 좋다는 그 말
거승죽방 기록 말미엔 오장이 허하고 손상된 경우와 기력, 근골에 관한 전통적인 식치 설명이 이어지고, 출전으로 『본초강목』이 표시돼 있어요. 검은깨에는 지방을 비롯한 여러 영양성분이 있고 세사민 같은 리그난 성분도 연구되고 있죠. 문제는 이걸 곧바로 '모근에 영양을 준다', '탈모를 막아준다'는 식으로 이어붙이는 순간이에요. 전통 기록과 현대 연구 사이에, 원자료가 말하지 않는 인과관계가 하나 끼어드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는 여전히 같은 얘기를 반복해요. 검은깨든 검은콩이든, 식품이나 한약재 형태로 탈모에 효과가 있다고 확인된 건 없습니다. 탈모가 고민이시라면 검은깨를 챙겨 드시는 것과 별개로, 처방받은 치료를 먼저 유지하세요..
참고자료
서유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정조지(鼎俎志) 거승죽방 — 임원경제연구소 역, 풍석문화재단 간행(2020)
『본초강목(本草綱目)』, 이시진 — 한의학고전DB(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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