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식료찬요인 게시물 표시

잠 못 이루는 밤, 조선의 식치서는 무엇을 먹으라 했을까|식료찬요 산조인죽

잠 못 이루는 밤, 조선의 식치서는 무엇을 먹으라 했을까|식료찬요 산조인죽 잠자리에 누웠는데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쉽게 잠들지 못하는 밤, 옛사람들에게도 있었어요. 조선 전기의 식치서 『식료찬요』에는 이런 상태를 '심번(心煩), 부득면수(不得眠睡)'라고 표현하고, 산조인으로 죽을 끓여 먹는 방법을 기록해뒀답니다. 오늘날의 질환명보다는 당시 사람이 겪는 상태를 중심으로 음식의 쓰임을 설명한 거예요. 목차 산조인죽은 어떤 음식일까 식료찬요의 산조인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심번과 부득면에 산조인죽을 기록한 이유, 그리고 알아둘 점 1. 산조인죽은 어떤 음식일까 산조인(酸棗仁)은 멧대추의 씨 속에 들어 있는 종인이에요. 겉의 열매를 먹는 대추와 달리, 단단한 씨껍질 안쪽의 알맹이를 약재로 써요. 『식료찬요』에서도 산조인을 과일이나 곡물처럼 죽에 그대로 섞지 않고, 물에 갈아 즙을 얻는 방식으로 다뤘어요. 여기에 쌀을 넣어 한 그릇의 죽으로 완성하는 거죠. 산조인죽의 구성은 참 단순해요. 산조인과 쌀, 물이 중심이라 여러 약재를 배합한 탕약과는 형태부터가 달라요. 쌀이 익으면서 전분이 풀어져 부드러운 죽이 되고, 산조인에서 얻은 즙이 죽의 액체 부분을 이뤄요. 약재를 달인 물만 마시는 게 아니라 곡물을 함께 익혀 음식으로 먹었다는 점, 『식료찬요』다운 식치의 특징이 잘 드러나는 죽이랍니다. 2. 식료찬요의 산조인죽은 어떻게 만들었을까 기록에 제시된 재료는 산조인 1냥과 쌀 2홉이에요. 먼저 산조인 1냥을 잘게 썬 뒤 물 1되에 넣어 갈아요. 그런 다음 즙을 얻고 여기에 쌀 2홉을 넣어요. 산조인을 통째로 쌀과 함께 끓이는 게 아니라, 먼저 물로 산조인의 즙을 마련하고 그 액체로 죽을 만드는 순서예요. 이 조리법에서 눈여겨볼 부분이 '연취즙(硏取汁)', 그러니까 갈아서 즙을 취하는 과정이에요. 단단한 종인을 물과 함께 갈아 액체를 얻은 뒤 쌀을 익히는 데 이용해요. 산조인 가루를 완성된 죽...

정조 임금의 변비, 어떤 변비였을까|하기이수라는 힌트

정조 임금의 변비, 어떤 변비였을까|하기이수라는 힌트 안녕하세요! 오늘은 조선 왕실 기록 속에 남아있는 정조 임금의 건강 이야기와 한의학 상식을 풀어보려고 해요. 1788년 일성록을 보면 정조 임금이 밤새 대변을 잘 못 봐서 '아랫배가 더부룩하다'고 호소했던 기록이 있어요. 당시 어의들은 욱리인을 미음에 타서 생강즙과 함께 올리라고 처방했고, 그 욱리인을 율무와 함께 죽으로 끓여 먹는 방법이 『식료찬요』에도 전해지고 있답니다. 그런데 정조 임금은 대체 어떤 유형의 변비로 고생했던 걸까요? 한의학에서는 변비를 단순히 한 가지 원인으로만 보지 않거든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하나씩 찾아가다 보면, 왜 하필 율무를 짝지어 처방했는지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어요. 정조가 처했던 상황부터 보면 정조 임금은 즉위 초부터 마음 편히 잠들기 어려웠던 왕이었어요. 세손 시절에는 독살 위험 때문에 밤에도 경계를 늦출 수 없었고, 즉위 1년째인 1777년에는 실제로 자객이 밤새 책을 읽던 존현각까지 침투한 사건(정유역변)이 있었거든요. 그 이후로도 직접적인 암살 위협에 여러 차례 노출되었으니, 마음 편히 쉬거나 깊은 잠을 이루기가 정말 힘들었을 거예요. 한의학에서는 이렇게 오래 쌓인 스트레스와 억눌린 긴장 상태를 '간기울결(肝氣鬱結)'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해요. 마음이 계속 긴장하고 억눌린 상태가 이어지면 소화기관을 포함해 몸 전체의 기운 순환이 정체된다고 보는 거죠. 정조가 처했던 특수한 상황을 떠올려보면, 이러한 기운의 정체가 실제로 일어났을 가능성을 합리적으로 추측해볼 수 있어요. 변비에도 '마른 변비'와 '습한 변비'가 있다 한의학에서 변비는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나누어 살펴봐요. 첫 번째는 몸에 진액이 부족해 장이 메마르고 딱딱해진 '마른 변비'예요. 이럴 때는 장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약을 사용하게 되죠. 다른 하나는 반대로 몸에 습한 기운이 정체되면서 장의 움직임 자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