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라벨이 정조지인 게시물 표시

정향과 침향으로 지은 밥, 임원경제지 '반향반'의 진짜 정체

정향과 침향으로 지은 밥, 임원경제지 '반향반'의 진짜 정체 예전에 한방병원에서 근무할 때 침향 위품에 관한 기획서를 쓴 적이 있어요. 인도, 베트남, 말레이시아산 아갈로차속(Aquilaria) 침향 샘플을 구해다가 실제로 수지만 따로 채취해 성분검사를 해봤는데, 결과가 좀 충격적이었어요. 위품들은 같은 아갈로차속이고 관능(향)이나 수지의 형태까지 진품이랑 거의 똑같은데, 정작 활성성분은 거의 안 나오더라고요. 그 뒤로 시중에 나온 침향환, 침향단, 침향공진단 같은 제품들을 볼 때마다 이 생각이 떠나질 않아요. '이게 정말 아갈로차속이 맞을까, 그중에서도 수지 부분만 제대로 써서 활성성분이 실제로 들어있는 걸까' 하고요. 이 경험을 하고 나서 다시 보게 된 음식이 하나 있어요. 『임원경제지』 「정조지」에 나오는 반향반(盤香飯)이에요. 정향과 침향을 넣어 짓는다는 '향기 나는 밥'인데, 오늘은 이걸 짚어볼게요. 목차 반향반은 정말 정조지에 있는 조리법일까 침향, 진짜인지부터 의심해야 하는 이유 정향의 오이게놀, 밥 한 그릇의 효과로 이어질까 1. 반향반은 정말 정조지에 있는 조리법일까 반향반을 설명할 때 정향(丁香)이나 침향(沈香) 같은 향이 강한 재료가 함께 언급돼요. 이 때문에 반향반을 '소화를 돕는 약선밥'처럼 이해하기 쉬워요. 근데 여기서 한 가지 구별할 게 있어요. 약재를 쌀과 섞어 최종적으로 함께 먹는 것과, 향이 강한 재료를 취사 과정에 이용해 밥에 향을 전달하는 건 조리 원리가 서로 달라요. 특히 반향반과 관련해 정향이나 침향 등의 향약을 별도로 싸서 밥을 지을 때 이용했다는 조리법이 소개되기도 해요. 다만 현재 확인한 자료만으로는 이 세부 방법을 『정조지』 원문의 문구와 대조해 확정하기 어려워요. '정향과 침향을 넣은 주머니를 솥 한가운데 두었다'는 내용을 확정된 조리법으로 단정하기보다는, 원문을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으로 남겨...

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검은깨죽 레시피, 다들 조를 넣던데 원래는 쌀이었어요 종종 환자들에게 탈모 얘기가 나오면 저는 늘 같은 설명해 드려요. 피부과 가셔서 나스테리드나 두타스테리드(아보다트) 같은 약을 처방받아 복용하시고, 여기에 미녹시딜을 두피에 바르시는 게 지금까지 확인된 방법이라고요. 근데 이 설명을 다 듣고 나서도, 정작 본인은 검은깨와 검은콩을 갈아 드시거나 검은깨를 환으로 빚어 챙겨 드신다는 분들을 정말 많이 만나요. 그럴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씀드려요. "이런 음식이 처방약을 대신할 수는 없습니다. 정말 효과가 있었다면 FDA에서 진작 승인이 되어 제약회사에서 약으로 만들었을 거예요." 검은깨 얘기가 나온 김에, 오늘은 조선시대 요리책에 실린 검은깨죽 하나를 살펴볼게요. 흔히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는 그 죽이요. 조가 아니라 쌀이었다 서유구라는 학자가 쓴 『임원경제지』라는 책이 있어요. 조선 후기에 생활에 필요한 온갖 지식을 모아놓은 백과사전 같은 책인데, 그중 음식 부분에 죽 만드는 법이 여러 개 나와요. 그 열한 번째로 나오는 게 오늘 얘기할 '거승죽'이에요. 거승은 검은깨의 옛날 이름이고, 요즘 말로 하면 그냥 흑임자죽이에요. 근데 인터넷을 찾아보면 이 죽을 '흑임자속미죽'이라고 부르면서, 쌀 대신 조를 넣어 만들었다고 설명하는 글이 많아요. 실제 원문을 확인해봤더니, 이건 틀린 얘기더라고요. 원문에 적힌 재료는 조가 아니라 멥쌀이었어요. 한자로 조는 '속미', 멥쌀은 '갱미'라고 쓰는데, 책에 분명히 '갱미'라고 나와 있어요. 한 글자 차이라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걸로 '옛날엔 쌀 대신 조로 죽을 쒔다'는 얘기 자체가 근거 없는 얘기가 돼버려요. 사실 이 죽에서 진짜 눈여겨볼 부분은 쌀도 조도 아니에요. 검은깨를 손질하는 과정이에요. 검은깨를 아홉 번 찌고 아홉 번 말려서 보관해뒀다가, 쓸 때는 뜨거운 물에 불려서 천에...

정조지 권5를 넘기다 보면|대합 하나로 갈라지는 두 개의 조리법

대합, 굽는 법과 회로 먹는 법이 따로 있었다|'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의 정체 안녕하세요! 오늘도 서유구 선생님이 쓴 옛날 요리책을 조용히 읽어보다가 너무 재밌는 지점을 하나 발견해서 달려왔어요. 글쎄 대합이라는 조개가 두 번이나 등장하는데, 한 번은 노릇하게 구워 먹는 법으로, 또 한 번은 싱싱하게 회로 먹는 법으로 각각 따로 실려 있더라고요! 근데 요즘 이 조리법들을 소개하는 글들을 보다 보면,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궁중 비방으로 소개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돼요. 결론부터 딱 말씀드리면, 이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은 원문 어디에도 전혀 없답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대합 요리의 진짜 정체를 깔끔하게 정리해드릴게요. 같은 조개인데 왜 두 번 나올까 이 책은 음식들을 조리하는 방법별로 차곡차곡 나눠서 정리해뒀어요. 불에 직접 굽는 요리를 모아놓은 파트에 대합 굽는 법이 하나 실려 있고, 회를 다루는 파트에는 대합 회 뜨는 법이 따로 실려 있는 식이죠. 같은 조개라도 굽느냐, 회로 먹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항목으로 구분해 기록해둔 거예요. 이게 왜 이렇게 흥미롭냐면요, 옛날 사람들이 같은 재료라도 어떻게 조리하느냐에 따라 아예 다른 음식으로 취급했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조개 하나 가져다 놓고 '몸 어디 어디에 좋다'는 효능 얘기부터 늘어놓는 것보다, 이렇게 옛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조리해서 즐겼는지를 들여다보는 게 훨씬 더 재미있는 지점이라고 생각해요! 혹시라도 이 옛날 회 뜨는 법을 그대로 따라 해보고 싶으신 분이 계시다면 꼭 한 가지만 주의해 주세요! 특히 여름철엔 조개가 비브리오균 같은 세균에 오염되기 쉬워서, 신선도가 정말 확실하지 않은 대합을 날로 드시는 건 절대 권하지 않아요. 옛날 조리법 기록과 요즘 우리가 지켜야 할 식품 위생 기준은 별개로 잘 챙기셔야 한답니다. '진주조개약선탕'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