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조가 타락죽을 끊게 한 진짜 이유|타락전복찜은 어디서 왔을까
영조가 타락죽을 끊게 한 진짜 이유|타락전복찜은 어디서 왔을까 1768년 1월, 영조는 봄갈이가 머지않았다는 이유로 내의원과 기로소에서 올리던 타락죽 진상을 정지시키고, 젖을 짜던 어미소를 송아지와 함께 놓아주라고 명했어요. 우유죽 한 그릇 때문에 소가 농사철 노동력에서 빠지는 걸 막으려던 거예요. 이 기록 하나만 봐도 조선시대 우유가 얼마나 귀하고 조심스럽게 다뤄진 재료였는지 감이 오죠. 그런데 요즘 이 타락에 전복까지 더한 '타락전복찜'이라는 궁중 비방이 있다는 얘기가 종종 보여요. 실제로 그런 음식이 있었을까요? 오늘은 이 부분부터 확인해볼게요. 목차 타락죽,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맞바꾼 음식 생복찜은 있어도 타락전복찜은 없다 우유와 전복, 함께 먹으면 정말 시너지가 날까 1. 타락죽,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맞바꾼 음식 타락(駝酪)은 우유를 가리키는 옛말로, 몽골어의 우유 관련 어휘에서 왔다고 설명돼요. 조선시대에는 젖소를 따로 기르지 않고 일하는 소가 송아지를 낳았을 때만 잠시 젖을 짤 수 있었기 때문에, 우유는 아무나 구할 수 없는 귀한 재료였어요. 앞서 말씀드린 영조 44년(1768년) 기록 외에도, 이보다 앞선 영조 29년(1753년) 7월의 기록에도 비슷한 취지로 낙죽(酪粥)을 올리지 말라는 명이 확인돼요. 즉 타락죽은 단순한 궁중 별미가 아니라, 소 한 마리의 노동력과 젖 짜는 시기까지 고려해야 했던 음식이었던 거예요. 빙허각 이씨의 『규합총서』에도 쌀을 불려 곱게 간 무리에 생우유를 섞어 끓이는 타락법이 전하는데, 여기서도 중심 재료는 쌀과 우유 두 가지고 전복이 함께 등장하지는 않아요. 그러니까 현재 확인되는 기록을 기준으로 하면, 타락죽은 우유와 쌀을 이용한 죽이라는 형태로 남아 있을 뿐, 전복과 결합한 찜 형태의 조리법으로 문헌에 남아 있지는 않아요. 2. 생복찜은 있어도 타락전복찜은 없다 『진찬의궤』 계열의 찬품 기록에서 전복을 다룬 음식을 찾으면 생복찜(生鰒蒸)이나 생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