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귀신과 당귀미, 같은 뿌리인데 왜 다르게 썼을까|당귀나물과 당귀주 이야기

당귀신과 당귀미, 같은 뿌리인데 왜 다르게 썼을까|당귀나물과 당귀주 이야기

대학 시절 본초학과 방제학 시간에 당귀를 배우면서 꽤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같은 당귀 뿌리인데 몸통 부위(당귀신)와 뿌리 끝 잔뿌리 부위(당귀미)의 효능을 다르게 가르치더라고요. 당귀수산이라는 처방에서는 어혈을 없애는 작용을 위해 당귀미를 쓰고, 공진단에서는 혈을 보하는 작용을 위해 당귀신만 쓴다는 거였어요. 같은 뿌리에서 부위만 다른 건데 왜 이렇게 갈리는 건지 궁금해서, 성분 차이를 다룬 논문을 찾아본 적도 있어요.

당귀도 다 같은 당귀가 아니다

그때 찾아보면서 알게 된 게, 부위 얘기 이전에 당귀 자체가 종부터 다르다는 사실이었어요. 우리나라에서 쓰는 참당귀(Angelica gigas)와 일본의 일당귀(Angelica acutiloba), 중국의 중국당귀(Angelica sinensis)는 겉모습도 다르고 뿌리 성분도 달라요. 세종 5년(1428년)에는 학자들을 명나라에 보내 살펴본 뒤, 중국당귀 대신 우리나라 참당귀를 의서에 올려 쓰기로 했다는 기록도 있어요.

성분 차이도 뚜렷해요. 참당귀에는 데커신과 데커신안젤레이트라는 성분이 있는데, 일당귀나 중국당귀에는 이 성분이 없어요. 대신 일당귀는 보혈 작용이, 참당귀는 혈액순환을 돕고 통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이 더 강하다고 알려져 있어요. 그래서 어혈에는 참당귀를, 보약에는 일당귀를 쓰는 식으로 구분하기도 해요. 참고로 시중에서 쌈채소로 파는 당귀잎은 대부분 일당귀예요.

나물로, 떡으로, 술로 먹었던 당귀

당귀는 옛날엔 '승검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어요. 서유구가 쓴 『임원경제지』에는 이 승검초를 채소로 재배하는 법이 나오고, 나물 종류를 정리한 목록에도 '승검초나물'이 실제로 이름을 올리고 있어요.

떡으로도 만들어 먹었어요. 당귀 잎을 곱게 갈아 찹쌀가루에 섞어 찐 뒤, 거피팥소를 넣고 잣 고물에 굴려 만드는 '승검초단자'라는 떡이 전해요. 뿌리는 약재로 쓰고, 향이 부드러운 잎은 떡에 넣어 하나도 버리지 않았던 셈이에요.

술로 담가 먹은 기록도 있어요. 『동의보감』에는 '당귀주'라는 처방이 실려 있는데, 당귀에 날계(매운 계피), 목향, 백지 같은 향이 강한 약재를 함께 넣어 빚었어요.

헴철과 데커신, 두 사실을 나란히 놓고 보면

소고기의 철분은 헴철 형태로 존재해요. 채소류의 비헴철보다 체내 흡수율이 높다고 알려진 형태로, 이는 실제 영양학에서 확인된 사실이에요.

한의학적 관점에서는 이 헴철과 당귀의 데커신을 나란히 놓고 흥미로운 해석을 시도해볼 수 있어요. 소고기가 혈의 재료인 철분을 공급하고, 당귀가 그걸 몸에 잘 받아들이도록 돕는다는 식으로요. 다만 이건 두 전통—현대 영양학과 한의학—의 개념을 나란히 놓고 해석하는 방식이지, 헴철과 데커신이 실제로 상호작용해 조혈을 촉진한다는 게 임상적으로 확인된 건 아니에요. 더구나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데커신은 참당귀에만 있고 일당귀·중국당귀에는 없으니, '당귀에 데커신이 있다'는 한 문장으로 뭉뚱그리는 순간 이미 중요한 정보 하나가 빠지는 거예요.

당귀주처럼 활혈 작용이 있는 약재를 술에 담가 드시려는 경우, 이미 항응고제나 항혈소판제를 복용 중이시라면 임의로 드시기 전에 상의하시는 게 안전해요. 어지럼증이 있을 때 당귀 요리를 빈혈약 대신 챙겨 드시려는 분들도 종종 만나는데, 갑자기 일어설 때 눈앞이 하얘지는 증상은 빈혈뿐 아니라 기립성 저혈압, 탈수, 드물게는 심장이나 신경계 문제로도 나타날 수 있어요. 이런 증상이 반복된다면 음식으로 접근하기 전에 혈액검사 등으로 먼저 원인을 확인하시는 게 안전합니다.

당귀는 나물로도, 떡으로도, 술로도 오래 먹어온 재료예요. 다만 그 의미는 참당귀·일당귀라는 종의 차이, 당귀신·당귀미라는 부위의 차이까지 정확하게 아는 데 있어요.

참고자료

서유구,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관휴지(灌畦志)·정조지(鼎俎志) 승검초(당귀) 관련 기록 — 임원경제연구소 역, 풍석문화재단 간행(2020)

허준, 「동의보감(東醫寶鑑)」 당귀주(當歸酒) 관련 기록 — 한의학고전DB(한국한의학연구원)

농사로 - 참당귀와 일당귀, 중국당귀의 차이

한국전통지식포탈 - 참당귀(當歸) 약재 정보 및 데커신 등 성분 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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